<한국 경제의 길을 묻다 -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순환출자 규제-유럽 상호출자만 일부 존재”, 각 경제민주화 논의별 사례 분석

지난달 30일 국회도서관에서 진행된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 모습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효율성이 한계에 도달해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지주사의 계열사 지배구조 및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계열분리와 기업분리 명령제 도입 등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미국은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있고 유럽 국가들은 상호출자만 일부 존재하는 등 선진국들의 사례를 분석해 이해를 도와 시선을 모았다.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지난달 30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한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변호사는 “기업집단 규제와 경제력 집중 억제를 통한 재벌 개혁은 재벌 그룹이 각 계열사를 적은 지분으로 전횡적으로 지배하고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막기 위해 위반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재벌 순환출자 구조 해소, 지주회사의 계열회사 지배방식 개혁, 계열분리 및 기업분리 명령제도 도입 등이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재벌 개혁을 위한 커다란 과제별로 현재 문제점과 대안, 해외 선진국 사례 등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구조는 지배주주가 직접 지분의 총합을 늘리지 않아도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본금 100억 원을 가진 A사가 B사에 50억 원, B사가 C사에 30억 원, C사가 A사에 10억 원을 출자하는 순환출자 경우를 상정했다. 이 경우 A사가 자본금 100억 원으로 B사와 C사를 모두 지배할 수 있으며, 자본금이 110억 원으로 증가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는 것. 

이런 상태에서 A~C사의 기업집단은 실제 자본은 100억 원이지만 장부에만 존재하는 10억 원의 거품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환상형 순환출자가 다른 주주의 지분적 이익을 침해하며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 및 강화, 승계를 위한 방법으로 이용돼 경제력 집중 심화 결과를 초래하며, B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돼 부도 처리되면 A사의 자본 중 50억 원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계열사 한 곳의 위험이 전체로 전이되는 리스크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크다는 비판이다. 

미국 24개 주가 채택한 모범회사법(Model Business Corporation Act)에 의하면 A사가 직간접 지분을 모두 합해 B사의 지분 50% 이상을 소유할 경우, B사는 A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해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각 국가별로 순환출자에 대한 규정이 다르지만, 가장 단순한 상호출자 방식이 스웨덴 17%, 네덜란드 9%, 프랑스 5%, 덴마크 3%, 이탈리아 3% 수준으로 최근 상호출자 관행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신규 순환출자 문제는 공정거래법 신설로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기존 순환출자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를 그대로 허용하는 것은 기업 간 형평성에 맞지 않고 이미 재벌의 지배구조가 기존 순환출자를 통해 공고해져 대안으로 미흡하다”고 전했다. 

2014년 7월 24일 이전에 형성한 기존 순환출자를 3년 이내에 해소할 것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주사의 계열사 지배 방식 개혁도 주문했는데, 지주사 제도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에서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혁 방향으로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등 유럽 재벌 체제를 모델로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해 1999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도입 당시 지주사법은 부채비율 상한 100%, 비상장사 50%‧상장사 30%의 자회사 지분율 하한, 손자회사 금지 등의 조건이었지만 2004년 1번, 2007년 2번에 걸쳐 행위제한을 완화해 증손자회사까지 허용했다는 것. 

그는 “재벌개혁에 철저하지 못했던 역대 정부와 국회가 지주사 행위제한 완화를 통해 재벌들의 증손자회사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됐다”며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 등 경제력 집중현상을 방지하자는 지주사 행위제한 규제는 실효성을 상실하고 여전히 계열사를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영국의 경우 지주사가 자회사를 지배하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게 되면 자회사 지분 의무보율 비율에서 부족한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수하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EU 집행위원회는 13년 동안 검토한 결과 2002년 영국 방식과 비슷한 EU 공개매수지침을 제안해 회원국 다수가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재벌 총수일가의 전횡과 혈연세습 방지를 통한 재벌 개혁방안도 제시했다. 

재벌 총수일가로부터 독립된 이사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는데, △사외이사제와 감사위원회 강화 △주주대표소송제 도입 △일감몰아주기 통한 사익 편취 및 경영권 승계 방지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법 마련 등을 제안했다. 

그는 “일감몰아주기는 대기업집단 총수나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 소규모 자본을 출자해 법인을 설립하면 계열사들이 해당 법인에 일감을 몰아줘 기업 가치를 급등시켜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라며 “시장 경쟁을 거치지 않고 계열사를 통해 손쉽게 재산을 형성하는 것으로 일감을 몰아준 법인 주주들에게 귀속될 이익이 특정인의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경제적 집중을 심화시키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해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판례상 이사와 임원이 자신의 이익에 우선해 회사의 이익을 존중할 의무로서 회사기회이론을 논의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이사나 임원들이 유용했다면 법원이 유용 재산의 회사 인도를 명령할 수 있다.

영국은 회사의 기회를 회사 재산과 유사한 것으로 보는데, 회사의 기회를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이라고 보지만 미국만큼 판례가 축적되지는 않았다. 일본의 경우 주식회사 이사의 주의의무와 이익상반거래 금지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회사기회유용이론에 대해서는 연구단계이다.

◇ 계열분리‧기업분리 명령제, 어떤 제도인가

이날 제기된 재벌 개혁 방안들 중 가장 낯선 계열분리 및 기업분리 명령제는 과거 미국에서 독점화된 정유회사, 철강회사 등을 분리해 시장경쟁체제를 확보하는 데 사용했던 제도이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운영체계 프로그램 사업 분리 등에 적용됐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재벌 해체 과정에서 이 제도가 여러 차례 사용된 적이 있고, 미국은 셔먼법 등을 통해 거래제한 및 독점을 금지하고 검사가 독점 금지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해 형평법상 금지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 미국은 19세기 말 석유시장 90%를 장악했던 스탠더드 오일을 1911년 30개로 분할을 명령했고, 같은 해 담배시장 점유율이 95%이던 아메리칸타바코는 16개 지역회사로 분할됐다. 알루미늄 독점적 회사였던 알코아는 1945년 3개로, 1984년 통신 독점기업 AT&T는 8개의 독립회사로 분할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재벌 지배주주가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시장의 공정성과 안전성을 교란하다 적발되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을 명령해 분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이와 관련된 입법은 아직 발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김 변호사는 “계열분리나 기업분리명령제는 지금처럼 너무 높은 수준으로 진행된 독점화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며 “명령 자체가 실제 실행되는 일이 매우 드물다고 해도 이런 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재벌 집단이 규율되는 효과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어 “재벌 그룹으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상황에서 이를 축소하거나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를 분리하거나 해당 사업부분을 분리하도록 하는 계열분리 및 기업분리 명령제 도입이 과제”라고 덧붙였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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