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 2024년 마련...공약 파기 논란
집값도 하락세로 전환
정부 진화 나섰지만 성남 민심 가라앉을지는 미지수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사진-연합뉴스)
경기 고양 일산 아파트.(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이현주 기자]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이 오는 2024년으로 밀리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사업 추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대선 직후 상승하던 1기 신도시 아파트 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신속하게 재정비 사업을 진행하겠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성난 민심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국민주거 안정 실현방안(8·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올해 하반기 중 관련 연구 용역에 착수한 뒤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에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앞서 인수위는 지난 5월 110대 국정과제에서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정해 1기 신도시에 1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허용하고, 안전 진단 규제를 완화해 재건축할 수 있도록 사업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1기 신도시 재건축 규제 완화가 2024년 이후로 밀리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2024년이면 총선거를 앞두고 계획을 발표하려는 것 같은데, 주민들을 총선 볼모로 잡겠다는 것이냐”, “대선 주요 공약인 것처럼 하더니 이번 정부에서 재건축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항의 글이 쏟아졌다.

아울러 분당시범단지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지난 22일 오후 주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기 신도시 재정비 촉구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의 공약 파기란 지적도 나온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서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1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과 규제 완화를 공약했는데 이렇게 쉽게 파기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마스터플랜을 2024년에나 수립하겠다는 것은 사실상의 대선 공약 파기”라고 주장했다.

1기 신도시 도시재생 추진 국회의원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김병욱 민주당 의원도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16 부동산 대책은 신도시 재정비 약속을 파기한 것과 다름 없다”며 “마스터플랜은 사업을 추진하는 척 시간 끌기를 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업계 일각에서는 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도 졸속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보통 대규모 신도시 정비 관련 마스터 플랜을 완성하는 데는 4∼5년가량 소요된다는 게 용역업계의 진단인 점을 고려할 때 1년4개월여 만에 마무리 짓는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기대감에 대선 직후 상승하던 1기 신도시 아파트 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지난 12일 보합(0.0%)에서 19일 0.02% 하락 전환했다.

특히 성남 분당의 아파트값 하락 폭이 0.04%로 가장 컸다. 안양시 동안구 평촌(-0.02%), 군포시 산본(-0.01%)이 그 뒤를 이었고 고양시 일산과 부천시 중동은 보합세에 머물렀다.

1기 신도시 지역의 아파트 매물도 일제히 증가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8·16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16일 당일 일산 서구의 아파트 매물은 닷새 전보다 5.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산 동구(3.9%)와 안양시 동안구(2.8%), 성남시 분당구(2.5%)의 매물도 줄줄이 늘었다.

학계 전문가는 1기 신도시가 당분간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1기 신도시 지역은 재건축 기대감으로 가격이 올랐다”며 “이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가격이 약보합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루기'가 아니라며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19일 브리핑을 열고 "신도시 같은 도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은 5년 이상 걸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마스터플랜 수립에 1년6개월 정도 소요되는 건 물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서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1기신도시를 명품 신도시로 탄생시킬 기반을 확실히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같은날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은 예전에 5년 걸릴 사안을 최대한 단축시킨 건데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원 장관은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1기 신도시 태스크포스(TF)'를 확대·개편하고 차관급으로 격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음달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5곳의 1기 신도시별로 전담 마스터플래너(MP)를 지정해 1기 신도시가 명품신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완료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성난 민심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 교수는 “정부가 1기 신도시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성난 민심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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