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초점]피해노동자 “나 같은 피해자 또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실명노동자 "오른쪽눈 완전실명, 왼쪽눈 10% 실루엣 확인만"
한정애 의원 “가해업체 1곳, 폐업 후 타인과 공동명의로 삼성전자 1차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 스마트폰 3차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다 실명한 피해 노동자 2명에 대한 추가 산재 신청 기자회견이 국회 정론관에서 열렸다. 환노위 소속 국회의원 3명과 노동건강연대는 메탄올 실명 피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하청구조 개혁을 촉구했다.

[일요경제, 손정호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 3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인해 실명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추가로 확인된 실명 피해자 2명이 산재 신청을 하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환노위 의원들이 다단계 하청구조를 비판하며 관련 피해 노동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건강연대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삼화 국민의당 간사,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12일 오전 10시 20분 국회 정론관에서 ‘메탄올 실명 노동자 추가 확인 산재 신청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존 5명의 메탄올 실명 노동자 외에 최근에 발견된 실명 노동자 2명이 함께 자리했다. 

작년 9월 11일부터 지난 1월 15일까지 BK테크에서 근무하다 시신경염 진단을 받은 35세 노동자는 실루엣 형태로만 사물을 식별할 수 있어 외출이 불가능하다. 

이 남성은 “나만 사고를 당한 줄 알고 병원에만 있었다. 회사에서 병원으로 찾아와 산재를 못하니 합의를 하라고 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나 말고도 다른 피해자들이 많았다. 앞으로 나 같은 환자들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년 1월 덕용ENG에서 근무했던 29세 남성은 대학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후 홈플러스 보안업체에서 일하다가 쉬면서 생활비 벌이를 위해 친구와 함께 문제의 사업장에 입사했다. 이 청년은 작년 2월 2일 호흡곤란과 앞이 안 보이는 증상으로 부천성모병원에서 시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이 청년은 현재 오른쪽 눈을 완전히 실명했고, 왼쪽 눈은 10% 정도의 실루엣 확인만 가능하다.

이 청년은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큰 용기를 내 이 자리에 섰다”며 “피해자인데 내가 죄를 지은 기분이다. 원인도 모르고 눈이 보이지 않는 다른 피해자들도 힘들 것이다. 용기를 내달라”고 호소했다. 

◇ 野3당 환노위 의원들, 근본적 대책 마련·전수조사 촉구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 환노위 의원들은 정부가 메탄올 실명 노동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만들 것을 촉구하며, 외주 하청노동자들의 산업보건 강화를 위해 다방면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정애 의원은 “최초로 메탄올 실명 노동자가 발생한 작년 2월에 사건을 공론화해 파견업체나 사업장에서 한 번이라도 취급물질을 확인했다면 추가 피해 청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3개 업체는 3개월 단위로 노동자들을 교체했다. 작년에만 400명의 노동자가 메탄올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노동부가 관련 3개 업체를 추적해서 발견한 메탄올 작업 노동자는 226명에 불과하다. 추가로 확인된 2명의 노동자는 이 업체들에서 근무했지만 노동부의 관리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며 “노동부가 파악하고 있는 명단 바깥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그는 “스마트폰 부품업체에서 근무했을 때 알코올 냄새가 나는 물질을 취급했고 이후 이유 없이 눈이 침침하고 몸이 이상하다면 지금이라도 나와서 피해가 제대로 밝혀지도록 해달라”며 “사건 발생 후 3개 업체 중 2개 업체가 폐업을 했고, 그중 한 곳은 다른 사람과 공동명의로 다시 업체를 꾸려서 이제는 삼성전자의 1차 업체로 등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여전히 많은 파견업체들이 이름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파견하고 있다. 노동부는 사고 후에도 몇 명의 노동자들이 메탄올에 노출됐는지도 파악 못하고 있다”며 “파견법을 개정해서 파견을 확대해야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고 하지만, 스마트폰을 만들어서 파는 대형 전자회사에만 좋은 일자리이지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고 질타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스마트폰 3차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다 실명한 피해 청년 2명도 함께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29살, 35살인 두 청년은 완전히 실명하거나 실루엣 형태로만 사물 식별이 가능한 실정이다.

김 의원은 “사고 발생 업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금속부품을 만드는 3차 하청업체였는데, 산업안전보건 교육은커녕 자신들이 쓰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일하다가 귀중한 두 눈을 잃었다”며 “메탄올을 취급하는 사업장에는 급속배기장치 등 환기를 하고 눈을 보호하는 보안경을 착용하고, 작업장 가까운 곳에 샤워식 비상세척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삼화 의원은 스마트폰 하청업체에서 메탄올 실명 피해재가 발생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단계 하청구조와 파견법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화학성 장갑을 착용하고 사용 빈도가 높거나 노출이 심할 경우 호흡용 보호구도 필요하다고 적시돼 있다”며 “첫 피해자로 밝혀진 여성 노동자는 3차 하청업체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일했고, 작업장에는 안전을 위한 보호장비도 없었다. 이게 파견노동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는 원칙적으로 사용 사업주와 파견 사업주가 공동으로 지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파견이 금지된 업종에도 파견을 허용하겠다고 하는데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는 제도와 정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정미 의원은 “갤럭시폰과 LG폰 등 세계적으로 내놓으라고 하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의 비통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며 “1kg당 700원의 단가를 절약하기 위해서 메탄올이라는 위험한 물질을 사용했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보호장치를 아끼려고 목장갑 하나로 일을 시켰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3차 하청 용역노동자들의 목숨 값은 이렇게 헐값이 돼도 되고, 아무렇지 않게 취급해도 되냐”며 “이번 기회를 통해 관련 노동자들의 피해 전수조사와 하청 유해화학물질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청 노동자들이 더 이상 위험에 방치되지 않도록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보완해야 한다”며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핵심적인 이유는 불법 파견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파견을 확대하자고 하는데 불법 파견도 뿌리 뽑지 못하고 어떻게 확대한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 노동건강연대 “메탄올 실명 피해는 ‘카나리아의 울음’, 더 이상 안 돼”

노동건강연대는 이날 추가로 확인된 메탄올 실명 피해 노동자 2명에 대한 산재를 고용노동부에 신청하고, 노동부를 압박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전개할 방침이다.

노동건강연대와 실명 피해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크게 여섯 가지다. △추가 환자의 메탄올 중독에 대한 신속한 산재 승인 △고용부의 메탄올 실명 사건 규모와 실체 파악에 역량 집중 △제조업 파견에 대한 전면적인 법·제도적 정책 전환 △노동재해 100% 산재보험 처리 △사업주의 산재 보고 의무 이행 위한 특단조치 △화학물질 중독사고 등 직업성 질환 집단 발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작년 2월 첫 환자를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다른 환자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파견 노동자들은 신원 확인도 어렵다. 노동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카나리아의 울음’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광부들이 광산에서 산소 농도를 알지 못해 카나리아가 울면 산소가 부족한 줄 알고 작업을 멈추고 바깥으로 나왔다고 한다”며 “메탄올 실명 피해 사건이 바로 ‘카나리아의 울음’이다. 제조업 파견 노동자는 건강 및 인적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데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메시지이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근무한 기간에 갤럭시7 시리즈 신제품을 생산해 작업량이 늘었다”며 “원청업체는 법적 책임이 없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삼성전자나 LG전자가 1차 하청업체에 대한 관리만 강조할 게 아니라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개혁과 공급구조 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적절한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대표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어서 환자들이 위축됐다. 개인적인 압력을 받는 부분들이 있어서 영상이나 사진에서 피해자 분들의 모습을 알 수 없게 처리해달라”고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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