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영국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제품 만들지 않았을 것...제3세계에 다른 기준”
“美 존슨앤존스 파우더 1인당 600억 배상, 생명·신체 피해에 엄격한 징벌 재상”

박주민 의원실과 함께 상한 없는 징벌적 배상제 입법을 추진 중인 참여연대의 김선휴 간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속 변호사인 김 간사는 징벌적 배상제 도입이 우리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허점을 개선할 것이라며, 이제 결단을 내릴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요경제]다음은 김선휴 간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상한 없는 징벌적 배상제 입법이 실현되면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제2의 김영란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고 보나.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혹시 처벌받게 될까봐 사람들이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장기적으로는 부족한 점을 수정 보완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공직사회, 학교, 사회를 만들어갈 거라고 생각한다. 징벌적 배상제도 기존 우리 사회에 없던 획기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분명히 여러 가지 반론들이 많을 것이다. 위헌 소송도 있을 것 같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MIT, CIT 성분이 치약에도 들어있고 화장품에도 들어있다고 기사를 봤다. 화학물질 하나만 해도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절차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작동되고 있지 못하다. 징벌적 배상제는 사후적으로는 잘못했으니까 책임을 지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하고 돈을 받았으면 처벌하자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다. 

기업들이 제품을 개발하거나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허위 과장 광고도 많다. 상한 없는 징벌적 배상제도가 도입되면 최대한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 과정에 분명히 반론도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의 경우 내수시장을 위축시킨다는 반론이 있다.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어떻게 기업을 하냐, 기업이 망한다는 반론도 당연히 제기될 것이다. 

옥시 래빗벤키저는 다국적 회사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가습기 살균제가 만들어져서 통용됐을까. 다른 나라들에서는 애초에 이런 제품을 만들어서 버젓이 팔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도적, 문화적 허점이 많다. 상한 없는 징벌적 배상제는 그런 부분들을 분명히 개선시키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옥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이어 아모레퍼시픽의 동일 성분 포함 치약 사건으로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경우 아이들 사망 피해가 심각해 어머니들의 죄책감이 크다고 한다. 주변인들의 심리적 피해 등 2차, 3차 피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적으로 큰 재해나 참사가 일어날 때 보통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같이 뭉쳐서 가해자에게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니까 그런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에서는 기업들을 정확히 관리 감독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 

아이들에게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했던 가족들이 갖고 있는 죄책감 문제도 있다. 올해 사건이 부각되기 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같이 활동했던 분들은 100명대 수준이었다. 확인된 피해자만 100명대였고 활동했던 분들은 더 적었다. 지금은 신청 받은 피해자가 사망자만 1000명이 넘는다. 피해자들이 당당히 피해를 주장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족들의 상처가 굉장히 깊다. 그 상처 때문에 가족이 무너지는 일도 굉장히 많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의 연대와 위로가 많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피해자 가족들, 생존 단원고 학생들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지만, 피해자 집단이 명확하게 있으니까 지원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피해 가정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받았을 엄청난 심리적 피해들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하는 측면이 굉장히 크다.
  
영국 옥시 본사에서 사과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습기 특위도 기간이 만료돼서 해산됐다.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 치유를 위한 국가적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게 너무 안 되고 있다. 제도 마련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구제가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서 90일 동안 활동하면서 청문회도 하고 옥시 영국 본사에 가서 조사도 했다. 그 일들을 90일 동안 다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유족들이 기간을 연장하라고 했지만, 정치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새누리당에서 반대해 연장을 못했다. 국회가 지금 이 사건을 이 수준에서 마무리하면 안 된다. 특위가 구성돼서 90일 동안 분명히 밝혀낸 것은 있다. 영국 옥시 본사도 발뺌하던 게 어느 정도 밝혀지니까 사과도 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피해구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사건이 종결이 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11년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및 피해 인과관계가 드러났다. 5년도 더 된 일이다. 피해자들은 이미 5년 동안 싸웠다. 처음에는 인과관계가 밝혀졌는데도 우리 사회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지난 국회에서도 심상정, 장하나 의원처럼 일부 의원들만 이 사안에 관심을 가졌다. 영국 옥시 본사도 처음에는 진짜 너무 적은 배상액만 제안했다. 당시에는 그 정도라도 받자는 피해자들도 있었던 것 같다. 싸움이 길어지면 본인들도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점점 이슈가 커지고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사회적 공분도 커지고 시민들이 분노하니까 옥시가 예전에 비해 훨씬 큰 금액을 배상액으로 제안한 것이다. 사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영국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제품을 팔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기 호흡을 통해 흡입한 독성은 피해가 더 크다. PHMG를 물에 타서 분출하는 형태로 상용화한 제품은 한국에서만 있었다. 여러 가지 드러난 정황상 옥시 본사가 이런 문제들을 모르지 않고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간에 성분을 교체하는 상황들도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굉장히 엄격한 기준이 있다. 그런 기준을 자국에는 적용하면서 외국 다국적 기업들이 제3세계에 가서는 본국에는 건설하지 않는 유해물질 생산 공장을 만들고, 본국 수준과 전혀 다른 근무환경을 유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옥시 래빗벤키저는 영국이나 다른 곳에서는 이미지가 좋은 기업이었다고 한다. 그런 다국적 기업들도 경제적 논리에 따라서 움직인다. 활동하는 국가의 규제가 어느 정도냐에 반응한다. 

-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있어 배상액 규모가 더 많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일 도이치방크는 주택담보대출 유동화증권(MBS) 불완전 판매로 최근 미국에서 15조5000억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미국의 법 집행은 어떤가.
 
법체계를 영미계와 대륙법계로 구분할 때, 대륙법계는 징벌적 배상제를 두는 국가가 아직 많지는 않다. 미국 같지는 않다. 집단소송도 유형이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식 집단소송이 있고 독일에는 단체소송이 있다. 미국의 징벌 규모가 더 크다. 존슨앤존스의 경우 땀띠 파우더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한 여성들에게 난소암이 발생해서 사망한 사례들도 있었는데, 원고 한 사람에게 600억 원이 넘는 배상액을 올해 2월 결정했다. 

미국은 징벌적 배상이 상당히 잘 이뤄지고 있다. 엄청난 금액이 아니라 소소한 금액으로도 실제 배상액보다 높은 금액으로 징벌적 배상이 잘 되고 있다. 미국에서 징벌적 배상이 잘 인정되는 사례 중에는 고의적인 보험 지급 거절이 있다. 멧 데이먼 주연의 ‘레인 메이커’라는 영화가 있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악의적인 핑계를 대면서 지급하지 않다가 엄청난 징벌적 배상을 받는 내용이다. 맥도널드나 존슨앤존스 파우더나 BMW 차량 도색 등 제조물 책임에서도 미국에서는 징벌적 배상 책임이 많이 거론되는 것 같다. 

배상액을 배심원들이 결정하는데, 법원이 감액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배심원들이 너무 세게 하면 법원이 감액하는 부분도 있다. 주들마다 약간씩 상한을 두고 있기는 하다. 손해액의 몇 배인가, 손해액 중 더 많은 것이냐 적은 것이냐 등 나름의 기준을 두고 있기는 한데, 아예 상한이 없는 주들도 많다. 상한을 일부 둬도, 행위의 악성이 강하거나 생명과 신체 피해를 발생시킨 제조물 책임이 있을 때는 상한이 없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또 가해 기업의 경제적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에게 1억 원을 부과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지만 중소기업에게는 1억 원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기업의 자산액 등도 고려 대상이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등 기업에 과도한 벌금을 부과할 경우, 국가경제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문제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많이 하락했다. 단기적으로는 큰 배상 위험 때문에 제품 개발에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거쳐야 할 절차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비용을 증가시키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기업에게 당장 손해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게 결국 사건으로 터졌을 때 유발되는 기업의 신뢰도 추락 문제가 더 크다. 더욱이 해당 기업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이라면 우리나라 제품 전반에 오는 제품 신뢰도 추락이 큰 손실을 불러올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건전하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더 안전하게 운영하는 기업들이 더 많이 살아남는 국가가 더 좋은 국가일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따질 게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기업 문화를 건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징벌적 배상액은 우리나라가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지금 이걸 마련하지 않고 넘어가면 또 1000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게 더 큰 사회적 손실이다. 

사후약방문식으로 문제가 터지면 그제야 해결하기 위해 대책 마련을 논의한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만들어지고 판매된 과정을 보면 SK케미컬, 옥시, 중소업체들이 가습기 살균제가 잘 팔려서 너도 나도 만들어서 파는데, 말도 안 되는 물질들을 사람이 흡입하게 해서 사용하고 있다. 제품 승인을 다하고 판매하게 해준다. 그 과정이 너무 허술해서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그 과정 중 어느 한군데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도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과정에 공백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업과 정부 문화가 한순간에 고쳐지기는 어렵다. 징벌적 배상제 등이 이런 변화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만 미뤄졌으면 한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참여연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시민들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이 징벌적 배상제를 입법하도록 하는데 시민들이 힘을 더했으면 한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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