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조정위원회 무력화 후 보상위원회 만들어 피해자 일부만 보상금 지급”
“이재용 시대 삼성, 사람 생명·인권 소중히 해야 지속가능한 성장할 것”

반올림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안에 찬성 의견을 발표한 국민연금에 찬성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사망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등기이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요경제, 손정호 기자]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와 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 직업병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등기이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란 활동가는 25일 서울시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 차려진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의 천막 농성장 안에서 <일요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등의 직업병 문제에 대해 조정위원회를 통해 대화하다가 이를 무력화하고 사측 마음대로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일부 피해자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했다”며 “삼성은 이 문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 활동가는 “UN이 2009년 국민연금 같은 공공기금은 악덕기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원칙을 제시했는데, 국민연금은 가습기 살균제 기업에 3조원을 투자하고 삼성그룹의 여러 계열사 지분율도 높다”며 “국민연금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지도 제대로 묻지 않고 책임투자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없이 등기이사 선임에 찬성 의견을 발표하는 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재용 시대의 삼성은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고 계속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며 “지금 상태로는 반헌법적 무노조 경영과 노동인권탄압 등의 모습이 이재용 시대에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다”고 전했다.

아울러 삼성그룹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거액 기부,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 씨의 승마비용 지원 논란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2007년 사망한 황유미 씨 아버지가 당시 삼성에서 받은 돈은 500만원이었다”면서 “지금도 피해자들에게 2000만원으로 끝내자고 하는 삼성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피눈물로 번 돈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했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사건을 다뤄온 반올림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채 등기이사가 되려 한다며, 삼성전자 지분 8.69%로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에 오는 27일 열리는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에서 이 부회장의 선임안에 반대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이종란 활동가의 인터뷰 전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안이 27일 임시주주총회에 상정된다. 반올림은 국민연금에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찬성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 삼성그룹의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3세 세습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잘 알려진 내용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3대 세습자로 기존의 것을 이어가는 등기이사가 될 것인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공장의 직업병 피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문제는 벌써 9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10월 7일 국내외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온라인 캠페인도 벌였다.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 1년이 넘었다. 최소한의 직업병 문제 해결도 약속하지도 않은 건 삼성이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삼성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수백조원에 달하는 부를 쌓아올렸다. 직업병에 걸려서 224명이 아프고 74명이 죽었다. 삼성은 언론 플레이로 이 문제를 덮고 끝까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화학물질 사용과 관련된 자료들은 다 영업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경제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가 되는 게 책임경영의 시작이라고 미화하지만 무엇이 책임경영인가. 책임경영의 첫 출발은 삼성이 가장 밑바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산업재해 해결이 그 첫 출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삼성이 약속했던 대화를 재개하고, 사과와 보상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공식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 형태로 조정위원회를 통해서 대화를 하다가 작년 삼성은 일방적으로 조정위원회를 무력화했다. 사측 마음대로 보상위원회를 만들어서 일부 피해자들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삼성은 이 문제가 다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 얘기를 1년 동안 농성하면서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어떻게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매출이 수백조원에 달하고 150만 명이나 고용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책임 있게 잘 이끌어갈 경영인이냐는 검증 없이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재용 부회장은 재산을 편법·불법적으로 물려받았다. 이게 책임경영일까. 어떤 자격으로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아픈 후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있었고 갤럭시 노트7도 출시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3대 경영을 앞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시했으며, ‘이재용 업적 쌓기’로 등장시키려다가 갤럭시 노트7 문제가 생기지 않았냐는 분석들이 많다. 

황제경영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황제가 얘기하는데 감히 누가 거기에 토를 다냐는 것이다. 삼성은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되지 않는다. 그러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그런 문화 속에서는 점점 더 전진할 길이 가로막힌다. 그래서 황제경영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반헌법적 경영가치를 바꿔서 앞으로는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하던지, 직업병 문제에 있어서 미진한 부분이 있는데 약속한 바대로 대화를 재개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불법과 편법으로 얼룩진 세습이라는 오명이 있는데,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시그널 하나 없이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가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한다. 많은 결점과 문제가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국제노총, 세계에 전자산업의 화학물질 사용 문제점을 제기하는 NGO 등 여러 국내외 노동시민단체들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재용 부회장의 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책임경영을 제일 먼저 보여 달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연기금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에 대해 삼성전자에 구체적 해명을 요구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했지만, 국민연금은 한 번도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에 반올림은 무엇을 바라나.

- 국민연금의 운영자금 규모는 526조원에 달한다. 엄청난 거대 기금이다. 세계 3대 정도 된다고 할 정도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혈세를 걷어서 거대한 자금을 마련했고, 기금을 잘 운용해서 국민들이 미래에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연금 지급을 제대로 할 의무가 있다. 국민들도 국민연금의 최우선 운용원칙으로 안전성을 고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09년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가입하고 ‘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을 만들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하여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해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악덕기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기금 운용 원칙을 책임투자라고 정하고 있는데 우리의 국민연금은 그것도 지키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제조·판매한 회사에 국민연금은 3조원이나 투자했다. 대우조선해양에도 투자하고, 반헌법적 무노조 경영과 노동인권 탄압을 하는 삼성그룹의 여러 계열사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삼성 계열사 지분 보유율은 굉장히 높다. 삼성전자 지분도 8%를 넘는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에게 결격 사유가 있다고 제대로 묻지도 않고, 책임투자 원칙을 지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등기이사 선임 찬성 의견을 발표하는 건 문제다.

많은 국민들이 삼성을 비판하는 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무조건 싫어서가 아니다.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지금 같은 황제경영이나 오만과 독선으로는 장기적인 수익을 제대로 내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갤럭시 노트7 사태가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과연 수익성을 꼼꼼히 따졌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국제 의결권자문사들이 다 반대했다고 한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주식가치를 거꾸로 메겨서 억지로 통합했고 배임으로 고발까지 당한 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고 법원 판단까지 나온 상태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아무 문제없었다는 듯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수익성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 의견을 내기 일주일 전에,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났던 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고발도 당했다. 수익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뒷거래가 있었지 않았나 의심도 들게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되면 삼성그룹의 3세대 경영승계가 본격화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시대에 삼성전자 반도체 등 생산공정과 무노조 경영 등의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보나.

- 지금 이대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 갤럭시 노트7 단종 사태도 큰 문제다. 이재용 부회장이 비판받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 비판받지 않고 등장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국민연금도 그렇다. 

삼성을 견제하는 건 겨우 반올림이라는 아주 작은 단체와 소수의 삼성 해고 노동자들뿐이다. 피해자들은 병상에 누워 있고, 사망한 분들의 가족들은 다 슬픔에 잠겨 있다.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싸운 지 1년이 되도록 해결하도록 하는 목소리가 국가에도, 삼성에도 없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그만둘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겠나. 지금 상태로는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지 못하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반올림이 바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 선임 전에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답변을 하기를 바란다.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진행되는 자신만을 위한 대관식에 우리는 찬성할 수 없다. 

삼성그룹의 기술은 선진적이지만 노동조건이 중세적이라는 국제노총의 지적도 있었다. 이재용 시대의 삼성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삼성은 그래야 계속 돈을 벌 수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국제사회에서 망신만 당할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더 이상 짓밟지 않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기업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불통, 사회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삼성, 오래된 정경유착 역사가 있는 삼성, 70년 무노조라는 반헌법적 가치가 존재하는 삼성의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 당연히 바뀌어야 하고 벌써 바뀌었어야 한다. 이제라도 삼성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고 싶다면 기본적인 인권과 가치들을 진정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삼성그룹이 계열사 6곳을 통해 최순실 씨와 연관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200억 원을 기부한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 씨의 승마비용을 제공했다는 논란까지 일고 있다. 

-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 씨의 승마비용으로 수십억 원을 지원해줬다는 논란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2007년 23살 나이로 사망한 황유미 씨 아버지가 당시 삼성에서 받은 돈은 500만원이었다. 지금도 피해자들에게 2000만원으로 다 끝내자고 하는 삼성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짜내서 번 돈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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